전개과정 여순사건 전개과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댓글 0건 조회 286회 작성일 23-05-18 16:36 목록 본문 ■ 1948년 4월 3일 : 제주 4·3사건 발생 5월 4일 : 14연대 창설 (4연대 1개 대대 병력), 초대 연대장 이영순 5월 10일 :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 제헌국회의원 선출 7월 17일 : 대한민국 헌법 및 정부조직법 공포 8월 15일 : 대한민국 정부 수립 9월 5일 : 국방경비대는 육군, 조선해안경비대는 해군으로 정식 발족 10월 5일 : 박승훈 연대장 취임 10월 11일 : 제주도경비사령부 설치(사령관 김상겸 대령) 10월 13일 : 제주 파병을 위한 시가전 예행연습 10월 15일 : 제주도 파병 관련 명령 하달 10월 19일(저녁) : 14연대 군인들이 동족상잔 반대, 미군 철수 주장하며 봉기 10월 20일(새벽) : 봉기군 여수읍내로 진입해 새벽 6시경 여수읍내 장악 10월 20일(아침) : 봉기군 여수역에서 6량의 열차 및 차량을 이용해 순천으로 출발 10월 20일(오전) : 봉기군 순천 도착 10월 20일(오전) : 여수보안서 및 인민위원회 구성 후 경찰, 우익인사, 우익청년단, 지주 등을 색출.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 명의로 성명서 게시 10월 20일(오전) : 순천 장대다리에서 봉기군과 경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경찰이 패퇴 10월 20일(오후) : 봉기군 순천 점령 후 좌익학생과 노동자에 무기 지급하고 경찰, 친일인사, 우익요원 등 색출 여수 - 인민대회 개최하고 이용기, 박채영, 김귀영, 문성휘, 유목윤 5명을 인민위원회 의장으로 선출, 6개 항의 결정서 채택 광양 - 광양경찰서에 잡혀있던 민간인 27명 덕례리(반송쟁이)에서 경찰에 의해 학살 10월 21일(오전) : 이범석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 첫 발표 봉기군 광양읍내 장악 10월 21일(오후) : 봉기군 학구에서 시내로 퇴각 반군토벌전투사령부(사령관 송호성) 광주 설치, 7개 연대 10개 대대 병력 봉기군 벌교, 낙안, 보성, 고흥읍 장악. 좌익세력 구례읍 장악 10월 21일(저녁) : 여수경찰서 고인수서장, 김영준 등 우익인사 총살됨 10월 22일(오전) : 여수, 순천지구에 계엄 선포 10월 22일(저녁) : 봉기군 외곽지역으로 퇴각 (지리산, 백운산, 조계산으로 입산) 10월 23일 : 진압부대 순천 진압 10월 23일 : 해군 박격포와 함께 제5연대 1차 여수 상륙 시도 10월 24일 : 진압군이 인구부전투에서 봉기군과 시민군에게 큰 피해를 입고 패퇴 10월 25일 : 진압군 미평에서 대규모 여수탈환작전 준비 10월 26일 : 진압군의 무차별 포사격 개시, 여수에 잔류한 봉기군은 광양, 구례 방면으로 대부분 퇴각하고 여수읍내에는 소수 좌익청년과 학생들이 남아 있었음 10월 27일 : 진압군 여수 완전 진압 10월 28일 : 제14연대 해산 11월 20일 :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통과 12월 1일 : 국가보안법 발효 ■ 1949년 1월 13일 : 만성리 형제묘 집단 학살 10월 25일 : 전남도에서 여순사건 사망자 11,131명이라고 발표 6월 5일 : 국민보도연맹 결성 ■ 1950년 6월 ∼ 8월 :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형무소재소자 학살 ■ 1955년 4월 1일 : 지리산 입산금지령 해제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