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지역사회연구소



승승장구했던 여수의 근현대사 장면들(3부)철도·항구 개통되며 신시가지 조성 … 외지인들 ‘북적’
관재수  2013-01-23 21:46:28, 조회 : 3,257, 추천 : 371

철도·항구 개통되며 신시가지 조성 … 외지인들 ‘북적’
19. 본격화 되는 여수 시가지의 변화
1930년 역 설립한 뒤 인구 2만명 넘어
사람·물자 대량 수송, 여수발전 기폭
인구 집중에 부족한 상하수도 건설
한국인 거주 구항 일대 여전히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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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23일(수) 00:00

일본의 대자본으로 설립된 남조선철도주식회사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수 신항 구축에 나섰고, 1928년 그 신항과 내륙거점인 광주를 연결하는 철도 노선 광주∼여수선 신설공사를 시작했다. 이는 여수 발전의 기폭제가 되면서 이후 전남 동부권의 핵심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그림있음.)

사실 일제에게 목포, 광주에 이어 비중이 있는 도시는 여수였다. 여수는 어족자원이 풍부한 남해안의 중앙에 자리하면서 본토와 직결되는 곳이었다. 또 항구도시인 목포와 내륙도시인 광주·나주로 축을 이룬 전남 서부권에 이어 내륙의 순천과 동부권의 축을 형성할 수 있는 항구를 가진 곳도 여수였다.

이 관점에서 1910년대부터 일제는 여수에 철도와 도로를 놓고, 늘어나는 일본인들을 위해 상하수도, 전기 등 기반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다만 1800년대 후반부터 여수 근해의 어족자원을 노린 일본 어민들이 진출하면서 기반시설보다 편의·상업시설이 더 신속하게 여수에 들어섰다는 점은 특징이다. 경찰분소·우편취급소(1906년), 잡화점·요리점·여관(1907년) 등 개업 시기도 1910년 이전이고, 순천·벌교·남원을 잇는 시외전화도 광주(1908년)보다 1년 늦은 1909년 개통됐다.

여수의 근대식 도로에 대한 투자 기록은 1914년에 등장한다. ‘우편선로’라고 해서 격일로 우편물을 실어나른 순천까지의 8리(3.14km) 구간을 이 해 3만5913원84전으로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 이전부터 일본인들에 의한 해안가 매립이 계속됐기 때문에 매립지와 도심을 잇는 소규모 도로들도 연이어 들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대 국가기록원 자료는 대부분 항만 및 신시가지 조성을 위한 공유수면 매립, 광주∼여수선(이하 광여선) 설치, 일본인 이주어촌 조성 등에 집중되고 있을 뿐 도로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도로의 발전이 여수면의 인구증가로 바로 직결되진 않았다. 도로개수 공사 후 1915년 인구가 전년대비 16% 증가하긴 했지만, 여수면의 인구는 단지 4598명에 불과했고, 1920년에도 6109명으로 1만명을 넘지 못했다.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이 시기의 성장이 단순히 일본 이주어민의 증가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30년 여수역 개통과 함께 바로 그 해 여수면의 인구는 2만명을 넘어서 전년대비 18%나 증가했다. 사람과 물자의 대량 수송이 가능한 철도가 여수 발전의 기폭제가 된 셈이다.

광여선 설치에 나선 남조선철도주식회사(이하 남철)는 1928년부터 철도 부설을 위한 부지 매수에 나섰다. 토지 27만8000여평이 부지에 편입되는데, 이 과정에서 헐값에 토지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했던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다고 한다. 일부 소지주들로 인해 토지매수에 난항을 겪자 남철은 ‘철도용지매수알선위원회’를 만들어 강제매수에 착수했고, 기차역 부지 2만평은 여수면에 기부하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29년 2월26일에 여수읍, 그리고 27일 보성군에서 각각 광여선 기공식이 열렸다. 남철이 노선 부설을 서두르면서 일손이 부족해지자 1200여명의 중국인 노동자를 시마타니 기선회사 소속 카스가마루호에 태워와 투입하기도 했는데, 여수지역 노동자로 결성된 여수노동조합이 긴급회의를 열어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다는 기록도 있다. 1930년 10월에 개통예정이었던 광여선은 보성 주변 산지에 터널을 만드는 난공사인데다 노동자들의 파업까지 이어지면서 두 달 연기됐다. 이렇게 해서 광주에서 여수까지 총 160km를 4시간50분에 주파하는 광여선은 12월 20일에 개통하게 된다.

남철이 이처럼 광여선 설치에 매달린 것은 여수항과 여수역, 그 주변 신시가지 조성공사까지 맡아 하루빨리 수익을 얻고자했기 때문이다.

광여선 개통과 신항의 본격적인 영업으로 여수에는 외지인들로 북적이게 된다. 도시의 인구집중은 결국 극심한 도시문제를 야기했으며, 그 가운데 시급한 것이 바로 상수도였다. 여수에 일본인들을 위한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일본인이 장악한 행정기관은 광주·목포·순천과 같이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설치를 서둘렀다. 여수면은 1929년 2월20일 면 자체 사업으로 21만원(국고 보조 7만원, 도 보조 6만원)을 투입해 상수도 부설 공사에 착공, 그 다음해인 1930년 3월31일에 준공했다. 당시 급수예정구역은 여수면 시가 일원으로 하되 장래 시가의 발전을 예측해 덕충리까지 포함했으며, 급수예정인구는 1만명으로, 수원지는 여수에서 5.2km 떨어진 미평리에 마련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미흡했다.

1929년 여수면의 인구는 1만7987명, 1937년에는 3만1259명으로 인구가 증가하는데 반해 수원지는 단 1곳에 불과해 1939년에는 가뭄에 단수가 될 우려까지 발생했다. 또 급수의 대부분이 가정용수로 사용되면서 항구에 출입하는 선박, 군용시설에 공급할 물이 없었다. 이에 따라 1940년께 여수읍은 3개년 사업으로 공사비 80만원을 들여 오천리에 제2수원지를 구축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확보된 설비가 1일 최대 5000㎥의 급수능력을 가졌고, 급수 인구도 2만3000명으로 증가했으며, 식용과 군사용수로 각각 2500㎥씩 사용했다.

1930년대 초 여수 신항 배후지에 신시가지가 조성되는 것과 달리 주로 한국인이 거주했던 구항 일대 구시가지는 배수구도 없어 비가 많이 올 경우 도로가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에 불편을 겪어야 했다. 또 하수도 시설이 전무해 위생 문제도 심각했다. 여수읍은 이에 1934년부터 3개년 계속사업으로 공사비 6만원을 투입해 하수공사를 실시했다. 물론 자체 재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국고보조 3만원, 도 보조비를 1만5000원, 읍 자체재원 1만5000원 등으로 분담했다.

이 시기에 구시가지와 신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도 설치됐다. 이 도로 개설에도 용지매수 문제가 발생했으며, 읍 당국이 도로부지가 아닌 지역까지 임의로 강제수용하고, 도로 인근 토지에 수익자부담금을 평당 약 7전씩 부과하면서 토지소유자들이 항의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윤현석기자 chadol@kwangju.co.kr·윤희철

▲도움말 주신 분

노경수 광주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이봉수 동강대 건축과 교수

▲이 기사는 국가기록원·광주시·전라남도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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