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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산성
 운영자    | 2006·09·03 11:09 | HIT : 3,628

호랑산성(虎狼山城)

호랑산성은 둔덕동에 위치하며, 해발 410m의 호랑산 남서쪽 봉우리에 있는데 신라말 화랑들이 수련했다는 전설이 있어 일명 '화랑산성'이라고도 부르며, 산성 주위에 있는 굴을 화랑굴이라 부른다.

호랑산성에 대한 기록은 1942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城址(虎狼山城), 麗水面·三日面·雙鳳面, 邑ノ東北一里半虎狼山上ニアハ石城ニッ一部ハ天然ノ絶壁ヲ利用ス周圍凡西百間" 라고 언급되어 있고, 1978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文化遺蹟總攬 - 全羅南道編」에 "麗水 鳳山洞 城址 - 虎狼山 石城이나 대부분 破壞되고 없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1988년 여수 문화원에서 발간한「여수·여천 발전사」에 "호랑산성 - 삼일읍 호명리(삼일면 자내리, 쌍봉면 봉계리, 여수시 둔덕동 경계)에 있는데 長 1Km, 高 5∼6m쯤 되는데 선조 27년(1594)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이 왜적들의 침입을 막고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석벽을 구축한 것이라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라는 기록이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호랑산성은 호랑산 정상부에 남서쪽 봉우리에 있는 테뫼식 석성으로 평면형태는 부정형이고, 성의 북동쪽이 높으며, 남서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경사는 비교적 완만하고 암반이 없는 남서쪽과 서쪽, 남동쪽 일부는 성벽을 계속 연결하여 축조하였다. 그러나 암반이 있는 부분은 암반 사이에 성벽을 쌓아 자연지세를 잘 이용하였다.


성벽의 총 둘레는 약 454m이고, 성벽 가운데 서쪽 성벽의 일부가 가장 잘 남아있는데 외벽의 높이는 약 160Cm이며 외벽이 무너진 뒷채움석이 노출되어 있는데 높이는 180Cm이다. 내벽의 높이는 약 140Cm이고, 성곽의 너비는 500Cm이다. 그리고 무너져 있는 성벽의 너비는 약 30Cm에 달한다. 동, 남동, 북동쪽은 자연 암반이 절벽에 가까워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고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였지만 남동쪽 일부에는 성벽을 쌓은 부분도 있다. 암반이 없는 부분의 성벽은 대부분 내, 외벽을 모두 쌓고 그 사이에는 돌을 무질서하게 채워 넣은 협축식으로 쌓았고, 암반 위나 암반 사이의 좁은 공간에 쌓은 성벽은 편축식으로 축성하고 있어 혼합된 형태를 하고 있다. 성의 외벽은 석비레층이나 암반 위까지 판 후 별도의 기단을 두지 않고 곧바로 성벽을 쌓아 올렸다. 내외벽 모두 대체로 아래쪽은 큰 돌을, 위쪽은 작은 돌을 사용하였으며, 면이 고른쪽을 수평으로 맞추어 쌓아 올렸다. 정연하지 않은 돌 사이에는 잔돌로 쐐기를 박았다.

한편 북서쪽 구간 암반 위와 북동쪽 암반 사이의 성벽은 잔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데 아래 위의 성돌 크기가 비슷하여 축성방법이 다른 부분과 차이가 있다. 또 쐐기를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쌓았으며, 성벽의 외벽만 쌓고 그 뒤쪽으로는 돌들을 무질서하게 채워 넣고 내벽을 쌓지 않는 편축식으로 축성하였다.

한편 문지는 남서쪽 등산로로 이용되는 능선의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비켜선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렇게 문지가 능선의 정상부를 피하는 현상은 고락산성의 문지에서도 확인되듯이 삼국시대 성곽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호랑산성은 테뫼식 협축석성, 부분적으로 보인 성벽의 축성방법, 문지의 위치 등으로 볼 때 백제산성들과 같은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초축은 백제시대 말기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수습된 유물로 볼때는 주요 사용 시기가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 와류(瓦類)
    기와는 등문양에 따라 크게 선문, 격자문, 무문, 복합문으로 나뉘어지는데, 호랑산성에서는 선문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 토기류(土器類)
    수습되는 토기는 모두 경질토기편으로 정확한 기종과 기형은 알 수 없다. 태토는 사립이 일부 섞인 정선된 흙을 사용하였으며, 외부 문양은 무문, 종선문, 격자문 등으로 나누어진다.
    기벽의 두께가 0.8Cm 전후로 전반적으로 두텁다. 따라서 토기들은 대체로 대형으로 여겨지며 기종은 구연부가 외반된 대호(大壺)나 옹류(甕類)로 보인다. 구연부의 지름이 확인되는 것 가운데는 직경이 21C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저부는 대부분이 납작바닥이고, 동체부의 횡방향으로 돌아가는 돌대가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호랑산성 수습 토기들은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들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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