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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왜축제(장군성, 수중성)
 운영자    | 2006·09·03 11:34 | HIT : 3,628

방왜축제(防倭築堤, 장군성, 수중성)

수중성(水中城)은 장군도와 돌산도를 잇는 수중성으로, 장군도(將軍島)는 중앙동 구항에 있는 무인도로 섬의 주위가 600m 정보밖에 되지 않은 작은 무인도이나 대섬(大島)이라고도 부른다. 작은 섬을 대섬이라고 한 것은 대섬(竹島)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며, 이는 무인도를 뜻하는 대(독(禿))에서 대(竹)으로 바뀐 지명이다.
장군도는 여수만에서 광양만을 잇는 지름길로서, 이 해로를 거치지 않으면 돌산도를 우회해야 하기 때문에 남해를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해적선이나 왜구의 배까지 장군도의 동쪽수로를 자주 다니는 길목이 되자 전라좌수사 이량(李良)이 이들을 막기 위해 물 아래에 수중제(水中堤)를 쌓았다. 즉 해적선이나 왜구의 배가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돌을 쌓아 놓은 것으로 이 방왜축제(防倭築堤)를 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인식하여 수중성이라고 부른다.

이 방왜축제의 축제시기(時期)와 축제자(築堤者)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호좌수영지」에 "今有古墟島之左右波浪悍 古來倭寇南邊者由於此出沒寇掠弘治十一年丁節度使李公良運石塡築干島之左儼一郭寇不敢窺後人立碑題其面將軍城稱其島曰將軍島將軍盖詣李將軍也" 라고 하여 홍치(弘治) 11년(광해군 3, 1497)에 축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將軍島城 在左水營前二十里 水使李良築" 라고 하여 축제시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신증문헌비고(新增文獻備考)」에는 "성종(成宗) 갑인년(甲寅, 1494)에 수사 이량이 쌓았다." 라고 하여 「호좌수영지」에 기록된 축제시기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실록」에 이량이 광해군 3년(1497)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방왜축제의 시기는 성종 때인 1994년이 아니라 광해군 3년인 1497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전라좌수사 본영의 축성(1490) 7년 후에 해당된다.

현재 장군도와 돌산도를 잇는 방왜축제는 대부분 파괴되어 정확한 현상은 파악할 수 없으나 「李將軍咸川君諱良 防倭築堤碑」에 배로 돌을 운반하여 물 속에 던져 넣었다고 되어 있어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은 채 돌을 매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유속이 빠른 바다를 메구는 일이 매우 힘든 작업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장군도 주변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속이 몹시 빠른 지역이기 때문에 제(堤)를 쌓는 일은 더욱 더 힘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李將軍咸川君諱良 防倭築堤碑」의 내용에 의하면 축대가 수면 위로 상당한 높이까지 올라와 마치 성을 쌓은 것처럼 되어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적군의 배가 통행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만을 위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즉 내륙의 영성(營城)이 적군에게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병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간조때를 제외하고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섬 가장자리로 갈수록 큰 석재들이 놓여 있고 가운데 부분의 석재는 작은 석재들이 놓여 있다. 남아 있는 부분은 특별한 열을 이루지 않고 다양한 크기의 돌들을 무질서하게 채워 넣었고, 제(堤)의형태는 일직선을 이루지 않고 가장자리 부분은 너비가 30m 이상으로 제법 넓으나 가운데 부분은 약 10m 내외로 좁아 전체적으로 호형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훼손되면서 나타난 현상인지 축조할 당시부터 이러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량은 생졸년 미상으로 자는 자방(子房)이요,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연산군 3년(1497) 전라도 흥양(興陽)에 왜변(倭變)이 일어났을 때 녹도(鹿島)만호로 기용되어 적을 대파하고 많은 적을 참살하였다. 그 공으로 당상관의 품계인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에 특진됨과 동시에 일약 전라좌수사로 발탁되었다. 그런데 전라좌수영 남쪽에 작은 섬이 하나 있었는데 이섬과 돌산도가 해로가 바로 왜침의 통로로 소문난 곳이었다.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그는 곧바로 이 섬과 돌산도 사이의 해로를 차단하는 대역사를 단행하였으니, 깊은 바닷속에 바윗돌을 쌓아 수중성을 구축함으로써 왜적들은 물론 어떠한 선박도 이곳을 통과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수중성을 「將軍城」, 혹은 「이량장군방왜축제」라 칭하면서부터 섬의 이름도 자연히 「將軍島」라 부르게 되었다.

「李將軍咸川君諱良 防倭築堤碑 (이장군함천군허량 방왜축제비)」


함천군 이량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이 비석의 초초 입비(立碑)년대는 알 수 없으나 당초 장군도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 비문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마멸되었때인 인조 21년(1643) 이량의 5세손인 감가(監可) 이평원(李培元) 등에 의해 고쳐 세워졌다. 비의 원명은 「李將軍咸川君諱良 防倭築堤碑」인 이 비석은 숙종 36년(1710) 당시 전라 좌수사로 있던 이량의 8세손 이삼(李森)에 의해 영(營)서문밖에 다시 옮겨 세워지면서 비각도 함께 건립되었다. 그 뒤 20여년이 지난 영조 11년(1735)에 이량의 9세손인 이희하(李希夏)가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또 한차례 고쳐 세웠는데, 현재는 진남관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1643년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가 섬의 정상부에서 돌산도 쪽으로 조금 내려가는 길 옆에 위치하고 있다. 대좌는 화강암으로 된 자연석, 비신 하단은 파손되고 깨어진 부분을 시멘트로 보강했다. 비신은 화강암인데 풍화가 심하여 명문을 확인하기 힘들다. 그 크기는 현고 152Cm, 비신고 92Cm, 두께 26Cm, 너비 70Cm 정도이다.
이 비의 바로 옆에는 장방형의 비좌와 비신을 갖추고 옥개석을 얹은 중건비가 있는데 중건비 앞면에「李將軍咸川君諱良防倭築堤碑」라 쓰여 있다. 옆면과 앞면에 중건기(重建記)가 있고 끝부분에「檀紀四天二百九十八年己巳八月十一日」의 기록으로 보아 1965년에 중건된 비임을 알 수 있다. 그 크기는 현고 203.5Cm, 비신고 153Cm, 두께 30.5Cm, 너비 60.5Cm, 대좌고 50Cm 정도이다.

장군성비(將軍城碑)

장군성비는 방왜축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로 방왜축제와 바로 접하여 여수시 중앙동 산 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비는 자연암반 위에 세워져 있는데, 비의 전면에「將軍城」이라고만 새겨져 있을 뿐 다른 기록이 없어 건립연대나 다른 사항은 알 수 없다.
비신(碑身) 하단부 일부가 파손되었다. 이수( 首)는 운문(雲紋) 안에 용 2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으로 조식되어 있는데 비신에 비해 크기가 크다. 크기는 현고 269Cm, 비신고 204Cm, 비신너비 82Cm, 두께 27Cm, 자경 43Cm, 이수고 65Cm, 이수두께 26Cm이다.

충용의열비(忠勇義烈碑)
전면(북측)에는 '忠勇義烈'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최근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며 원래는 다른 명문이 있었으나 모두 지워지고 판독할 수 없다. 대좌는 시멘트이고, 비신석은 현무암 계통으로 면이 매우 거칠다. 후면(남측)에는 '請◇人 中平◇德一'이라는 명문이 있고, 서쪽 측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으나 마모되어 판독할 수 없다. 현고 130Cm, 최대너비 98Cm, 두께 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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