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지역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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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산성
 운영자    | 2006·09·03 13:49 | HIT : 5,223

경도산성(또는 당산성)

대경도 안몰의 앞산에 위치한 경도산성은 마을 사람들한테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백여년 전만 해도 날씨가 흐리고 파도가 치는 밤이면 성산(城山) 어느 곳에서 가냘프게 우는 여인네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흔적이 사라진 채 비바람에 허물어진 성돌만 이끼에 쌓여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전 점차 국운이 기울던 고려말이었다. 이곳 안몰 마을 앞 100m 성산에는 어디선가 뛰어난 미모를 지닌 어여쁜 여인 하나가 수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와서 외롭게 살았다. 시종들은 무리를 나누어 한 무리는 성산 뒤쪽 펴지에 커다란 대궐을 짓고, 또 다른 무리는 부근 해변과 산지 주변에서 커다란 돌을 주어다 21m 높이의 성을 쌓아 올렸다.

바람결에 들려 온 소문에는 이곳 섬에 정착한 미모의 여인은 왕비(후궁)이고 그 밖의 시종들은 조정의 신하라 하였다. 그들이 이곳으로 쫓겨온 사연은 어느날 왕비가 지엄한 어전에서 부지중 실수로 방귀를 뀌는 무례를 범하는 바람에 청천벽력 같은 귀양을 받고 유배된 것이라 했다.

이후부터 왕비는 축성된 성내 4,500여평의 땅을 갈아 춘하추동 갖가지 씨를 뿌리고 거두어 차차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더해가는 왕비의 억울함과 슬픔은 뼈를 아프게 하는 찬서리로 굳어만 갔다. 고독과 회환으로 가슴을 걷잡지 못해 왕비는 당시 조정에 나아가 관용의 은혜를 간곡히 진언했으나 번번히 허사로 돌아갔다. 어쩔 수 없는 슬픈 운명을 안고 되돌아온 왕비는 유배 당시 뱃속에 담고 왔던 태아를 분만했다. 옥동자였다. 갓 태어난 왕자를 본 후궁은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가운데도 왕자의 성을 자신의 성인 법중 여(呂)자로 썼다고 한다. 여(呂) 왕자는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라나 이웃 규수와 혼인하여 자손을 보게 됨으로써 이곳 여씨(呂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후궁의 억울한 사연을 안타깝게 여겨 성터에 그의 추모비를 세워 명복을 빌었다고 하는데 일제하 비마져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9-0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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