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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성
 운영자    | 2006·09·03 13:44 | HIT : 6,360

전라좌수영성(全羅左水營城)

전라좌수영은 북쪽의 종고산(鍾鼓山)을 후진으로 배경삼고, 남동쪽의 얕은 예암산을 안산으로 하여 산줄기와 그 사이에 생긴 경사대지 위에 축조한 일종의 평지석성이다. 남, 동 및 서쪽에 성문을 내고 남문 밖이 바로 바다와 면하게 하여 성체의 형상은 원형에 가깝다.

영성은 여타 읍성의 경우와 다를바 없는 배치로 「호좌수영지」의 영성도(營城圖)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객사 진남관(鎭南館)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서고, 남문에서 이곳에 이르는 가로는 객사와 동헌에서 로단경(路端景)이 된다. 즉 가로망은 남문에서 동헌과 객사로 이어지는 남북축과 서문에서 동문까지의 동서축이 삼교차(三交叉) 되는 곳에 객사와 동헌이 위치하며, 동쪽에 중영(重營)이, 서쪽에 향청(鄕廳)이 들어섰다.

좌수영성은 성종 10년(1479)에 내례포(內禮浦)를 철폐하여 수군절도영을 설치하고 수군절도사를 두면서 변화를 시작했다. 성종 16년(1485. 3월)에 모옥(茅屋) 대신에 성보(城堡)를 축조하기 시작하여 1491년에 성보(城堡)가 완성되었다. 이후 광해군 3년(1497) 절도사 이량이 돌을 운반 장군도 왼쪽에 축대를 쌓았고, 선조 24년(1591)에 이충무공이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해 성문 해자(垓字)를 축조했다. 선조 26년(1593. 7월)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충무공에 의해 거제 한산도로 진을 옮겼으나, 일년후 절도사 이시언(李時言)이 본직(本職)으로 옮겨 삼도(三道)를 통제할 제영사(諸營舍)를 건설했다. 이후 1664년 절도사 이도빈(李道彬)이 진남관(鎭南館), 망해루(望海樓), 결승당(決勝堂)을 재건했으나, 1716년 화재로 진남관(鎭南館)이 소실되었다. 1718년 절도서 이제면(李濟冕)이 진남관을 다시 중건하였는데, 고종 32년(1895) 전라좌수영이 혁파(革罷)되었다.

허섬(許暹)의 「호좌수영지」에 실린 성곽과 관아에 대한 사항은 임란을 거치면서 1895년 혁파때까지 다소의 변화는 있었지만, 거의 대체적인 전라좌수영의 면모와 크게 다를바 없다고 여겨진다. 전라좌수영이 최초 설치될 당시의 규모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경상우도(慶尙右道)와 함께 전라좌도(全羅左道)는 적로요해처(敵路要害處)이므로 성을 쌓도록 하였다.

「坐地東向 周回三千六百三十四尺 東西長一千二百尺 南北廣九百八尺 堡內水泉北至順川府 陸路二息二十七里 東至平山浦 水路四十里」라 하였다. 성종 21년 10월에 전라좌수영을 수축하였는데, 당시의 규모를 「周三千六百三十四尺」이라 하였는데, 성체의 둘레가 36,340척이며, 동서1,200척, 남북 908척으로 동서가 약간 긴 형상이었다.

그런데 1847년의 기록인 「호좌수영지」에는 체성(體城) 주위가 3,158 포척(布尺)이라 하였다. 당시에 포척 기준을 어디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치수에는 큰 차이가 없으며, 성안의 수천(水泉)도 각각 6곳과 7곳으로 대체적인 규모는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성종 년간의 규모를 당시의 영조척(營造尺)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약 1133.44m가 되는데, 현재 성곽의 유지(遺址)로서 실측되는 1.74Km와 약간의 차이만난다. 이러한 차이는 이후에 설치되는 치성(雉城)이나 옹성(甕城) 부분의 치수산정, 또는 측량방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쨌든 성종 21년에 성체의 기본 골격이 완성되고, 이후로는 이 바탕위에서 적절한 변용이 있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고 여겨진다.

영성(營城)은 1774년 절도사 김영수(金永綬)가 수축공사를 할 당시에 곡성(曲城)이 6처라 하였으며, 여기에 각각 포루(鋪樓) 6채를 세우고 화포기(火砲器) 6좌(坐)를 두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허섬(許暹)의 「호좌수영지」에는 1847년 당시 영성(營城) 내의 시설과 규모에 대해서 기록해 두었을 뿐 아니라 첨부한 영성도(營城圖)를 통하여 당시의 면모를 살펴 볼 수 있다.


현재는 복개되어 도심 간선도로가 된 굴강(屈江)을 따라 남문에서 망해루(望海樓)와 진남관으로 이르는 남북축은 그대로 유지되며, 서문에서 군자동과 중앙동의 경계인 골목길은 망해루에 이르고, 다시 여기서 진남관 동쪽 담장을 따라서 동헌에 이르러 동사동과 관문동의 경계인 골목길을 따라서 동문에 이르는데, 도중에 중영(中營)과 장대(將臺)인 고소대(姑蘇臺), 기타 건물들로 연결된다. 이러한 가로망이 당시의 삼교차로(三交叉路)를 이루던 영성 내의 주요 간선도로로서 지금은 골목길로 변하여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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