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신석기

1986년 돌산 송도 조개더미가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국립 광주박물관에서 2차례에 걸쳐 발굴함으로써 이 지역 신석기 시대 특징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문화 발달 단계로 보아 신석기 시대 생활 수단은 농경과 더불어 강과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나 조개류를 잡는 것이었으므로, 생활 근거지는 주로 강가나 바닷가에 분포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시대 사람들은 어로생활이 활발하여 생선류와 조개류를 잡았다. 따라서 주거지 주변에 먹고 남은 조개껍질이 버려지고 그것이 장기간에 걸쳐 쌓이는 사이에 퇴적층을 이루게 되었다. 때문에 조개더미는 당시 사람들이 직접 거주하였던 장소가 아니라 할지라도 위치와 분포지를 통하여 간접적이나마 당시의 주거 범위와 취락 규모, 생활양식 등을 추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자료이다. 여수반도에 분포되어 학계에 보고된 조개더미 유적은 35곳 이상이며, 대부분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의 바닷가에 분포하고 있다.

지표 조사를 통해 수습된 유물은 신석기 시대 토기류와 석기류가 대부분인데, 여수 지역 조개더미에서 수습된 토기 조각은 눌러찍은무늬와 가는금무늬, 점줄무늬, 덧무늬 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집터자리


덧무늬토기

여수의 청동기

여수지방에서 청동기문화의 개시가 언제부터인지 아직 확실한 자료는 없지만 전남 지방의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북방으로부터 남하한 청동기문화가 반도에 처음 들어와 이곳에 정착되기까지는 적어도 몇 세기가 흘렀을 것이다. 청동기문화의 유적으로는 집자리를 비롯한 주거유적과 고인돌이나 돌무지무덤과 같은 매장유적이 있지만 조사된 주거유적은 고인돌이 주류를 이루는 매장유적에 비해서는 수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분포범위에서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 가운데 가장 상징적 유적으로는 고인돌을 들 수가 있다. 한반도는 동북아시아 일원에서 활발히 이루어진 고인돌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지만 반도안에서도 가장 밀집된 지역이 바로 전남지방이다. 여수지역에서는 봉계동, 적량동 상적, 평여동 산본, 오림동, 월내동, 돌산 세구지, 미평동 양지와 죽림, 화장동, 상암동 및 둔덕동, 율촌 가장리 편촌 등의 고인돌이 발굴 조사되었다. 그리고 지표 조사 등을 통해 이미 보고된 고인돌 가운데서도 훼손된 것이 많다.

여수시의 고인돌의 군집 수와 개수를 살펴보면 돌산은 22군 181기, 소라면은 11군 98기, 율촌면은 16군 264기, 화양면은 25군 233기, 구 여수지역에 남아있는 고인돌은 17군 90기, 구 여천지역은 33군 230기, 도서지역의 고인돌 현황은 6군 37기의 고인돌이 조사보고되었다.

출토유물의 종류도 석기류나 토기류가 대부분이고 드물게는 굽은옥이나 구슬, 은장신구도 나오는데 최근에 여수에서의 고인돌로부터 요녕식 동검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청동유물이 출토되어 우리지역 고인돌의 특징적 성격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우리 지역의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요녕식 동검을 비롯하여 요녕식의 창, 한국식 동검, 살촉 등 몇몇 청동기들은 지금까지 한반도의 고인돌에서는 그 출토 예가 극히 드문 특이한 것들이다.



비파형 동검


오림동암각화1


오림동암각화2


왕바위재고인돌


오림동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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