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삼국시대의 여수지역은 4세기 후반 백제가 진출함에 따라 전라남도지방에 위치한 여러 소국도 백제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여러 소국을 곧바로 군현으로 편제하거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소국의 족장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을 통하여 간접적 공납 지배를 하였던 것이다. 여수지역도 그러한 상황에서 백제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5세기 중반에 이르면서 사정이 변하게 되는데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로 국력이 크게 약화되고 또한 가야국이 남원과 섬진강 하류지방에 진출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전라남도 동부지역은 일시적으로 대가야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백제는 538년 수도를 사비성으로 옮기고 전국을 중앙과 동서남북으로 구분하여 5방을 두었다. 방에는 방성을 설치하고 여러 크고 작은 성을 군 혹은 현으로 통제하여 지배하였다. 남방에 속하였던 순천, 여수, 광양지방에는 삽평군이 자리잡고 있었다. 삽평군에는 원촌, 마로, 돌산 등 3현을 속현으로 두고 있었다. 원촌현은 여수반도 일원이며. 돌산현은 돌산도를 비롯한 인근의 섬을 그 영역으로 하였다. 이때부터 여수지방에 처음으로 원촌과 돌산이라는 이름의 군현이 설치된다.

여수에 있는 백제 산성으로는 돌산 평사리에 위치한 월암산성, 선원동에 위치한 테미산성, 오림동의 자산산성, 문수동의 고락산성, 돌산 죽포리 본산성 등이 있다.


고락산성출토유물


고락산성외벽


고락산성문지


고락산성


고락산성출토유물2


도독 당목산성


달암산성

통일신라

삼국 중 제일 후진으로 반도 동부를 차지하여 일어난 신라가 점차로 성장하여 당의 세력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676년(문무왕 17)경에야 당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이로써 신라의 세력 범위는 겨우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한반도 가슴부위를 한계로 그 이남지역을 차지하는데 불과했고, 대고구려적인 기상을 잃은 통일이었다. 어쨌든 신라반도 통일은 행이건 불행이건 반도의 민중이 비로소 한 정부, 한 범속안에 뭉쳐 단일민족으로서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신라가 통일 이후 확장된 전 영토를 통치함에 있어 자연히 행정구역의 재편성을 단행하게 된다. 지방행정의 재편은 677년(문무왕 17)부터 687년(신무왕 7)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9주5소경제도이다. 이 제도는 신라가 단일 정부로서 중앙에서 백제, 고구려 구 영토와 신라고토를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체제로 관리를 지방을 파견하게 된다. 그 후 575년(경덕왕 16) 9주를 비롯한 군렷痔?명칭을 한식으로 고치고 각 주 밑에 군을 두고 그 밑에 현을 두었다.

그리고 통일과정에서 점령지역 지배층을 처리하기 위하여 주에 소속된 3소경(금관, 남원, 서원)이라는 특수 행정구역을 별도로 설정하고 그들을 회유 감독하였다. 구주가 시행되면서 그 중의 하나인 무주는 현 전라남도 일원을 관할하였으며 백제 때 삽평군이 승평군으로 명칭만 개칭되고 승평군 아래 원촌현을 해읍현으로 돌산현을 여산현으로 지명을 바꾸었다.

유적으로는 화장동 와요지 2기와 둔덕동에 있는 테마식 산성으로 호랑산성이 있다.


호랑산성


화장동 와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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