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동부지역의 호족 중에서 승주(순천)와 그 인근지역을 지배한 호족은 박영규와 김총이었다. 박영규는 순천 출신으로 견훤의 사위였다. 그는 견훤의 딸과 혼인하였고, 이어 견훤의 장군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순천지역을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지배한 유력한 호족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김총은 견훤의 신임을 받는 측근세력으로 인가별감의 지위에 올랐으며, 죽은 후에는 순천(진례산)의 성황신이 된 인물이다. 인가별감은 견훤을 가까이에서 호위하는 부대의 최고지휘관으로서 상당한 군사적 실권을 가진 관직이었다. 김총은 견훤과 함께 서남해에서 동고동락하던 방수군 출신으로 그 휘하의 군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개성 지방에서 호족세력으로 성장한 왕건이 궁예를 제거하고 918년 고려를 건국한 다음 935년 신라의 투항을 받아들이고 후백제를 멸망시켜 936년 후삼국을 완전히 통합하여 스스로 왕위에 올라 태조라 하였다. 그 후 940년(태조 23)에 전국을 주, 부, 군, 현으로 행정구역을 개혁하였다. 따라서 신라시대에 해읍현(여수), 여산현(돌산)이라 불리던 여수지역의 이름도 여수현, 돌산현으로 바뀌었으며 그 아래 삼일향, 진례부곡, 적량부곡, 소라부곡, 율촌부곡, 두평소, 조해소, 조수소 등이 있었다. 이 때 여수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나 모두 승평군(순천)의 속현이었다.

여수지방에 현령이 파견된 것은 몽고간섭기인 1350년(충정왕 2)년으로 당시 빈번해진 왜구의 침입과 관련이 있다. 특히 순천 여수지방에는 그 어느 곳보다도 많은 왜구가 침범하였고 규모도 컸다. 충정왕 대에 들어온 이 지방에 들어온 왜구는 한꺼번에 100여척 혹은 66척의 배를 몰고 왔다고 한다. 장생포 대첩을 통해 우리지방에서의 인명과 재화의 피해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민왕 초에 유탁이 전라도만호로 부임하였다. 그는 평소 위엄이 있으나 군사들을 아끼고 은혜를 베풀어 군사들이 경외하였다. 그는 왜구가 순천부 동쪽 60여리에 있는 쟁생포에 침입하였을 때 유탁이 바로 나아가 왜구들을 바라만 볼 따름이었는데 왜구들이 두려워 물러갔다고 한다. 이에 군사들이 크게 기뻐하여 장생포곡을 불렀다고 한다. 유탁이 장생포가를 지었는지 민간의 구전가요를 유탁이 채록하여 악부에 올렸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왜구의 잦은 침입에 장군과 군사가 일체가 되어 이를 격퇴하였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장생포는 지금의 안산동 장성지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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